2008년 01월 02일
2pac (투팍)
살아 생전 랩 가수이자 영화배우로서 몇 편의 스크린을 누볐고, 그 밖에 시인, 흑인 인권 운동가로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굴곡의 인생을 살다간 투팍은 재능 면에서 여타 힙합퍼들보다 특출났다. 특히 흑인사회, 더 나아가 미국사회에 대한 반항적 메시지로 하층민의 삶을 대변해주기도 했던 그는 사후(死後) 힙합 필드 최고의 인물로 지금껏 추앙받고 있다.
투팍(본명, Tupac Shakur)은 1971년 뉴욕의 브룩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둘 다 과거 흑인 과격 단체로 악명높던 블랙 팬더(Black Panther)의 멤버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세상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아버지의 존재는 없었고, 홀어머니 아페니 샤커(Afeni Shakur)가 그를 키웠다.
10대 성장기 시절 투팍은 볼티모어 예술학교(Baltimore School of the Arts)에 다니면서 랩 가사 쓰기와 연기 활동에 몰두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 되서야 그의 가족들은 뉴욕을 떠나 서부 캘리포니아주 마틴시(Marin City)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투팍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거리의 허슬러 삶을 시작하고 됐고, 마약 딜러 일을 배우면서 악의 소굴로 점차 빠져들었다. 허나 그의 인생에서 랩은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고 또한 희망이었다. 결국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적이 있는 랩 그룹 디지털 언더그라운드(Digital Underground)의 백업 댄서 겸 래퍼로 발탁돼 팝계에 입문, 본격적으로 그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1991년 말 솔로 데뷔작 <2Pacalypse Now>(1992)를 내놓고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대중음악계에 각인시켰다. 음반이 나온 뒤 금새 입소문이 퍼진 1집은 R&B/힙합 앨범차트 13위까지 상승했고, 싱글 'Brenda's got a baby'는 싱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게다가 연기에도 재능을 보인 그는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고, 특히 자넷 잭슨과 함께 출연한 영화 <Poetic Justice>(1993)를 통해 무비스타로서도 유명세를 탔다.
1993년 발표한 2집 <Strictly 4 My N.I.G.G.A.Z.>는 R&B/힙합차트 4위까지 랭크됐고, 'I get around'(11위), 'Keep ya head up'(12위) 같은 히트 싱글을 배출했다. 하지만 성공도 잠시 잠깐이었다. 갱스터 래퍼로 성공했으나 곧 시련이 닥쳐왔다. 성희롱 죄를 비롯, 일련의 추잡스런 사건을 통해 그는 감옥을 몇 차례 들락날락 거리는 위기를 맡기도 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투팍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했다. 웨스트코스트 랩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4집 <Me Against The World>(1995)의 성공으로 슈퍼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음반이 출시되었을 때 그는 감옥 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Me Against The World>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은 동명 타이틀곡을 비롯해 'Dear mama'(9위), 'So many tears'(44위) ,'Temptations'(68위) 같은 싱글을 연이어 히트시켰고,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다. 국내에서 투팍이 유명해진 것도 이 무렵 블록버스터 영화 <나쁜 녀석들> 사운드트랙에 'Me against the world'가 삽입되면서부터다.
불행하게도 음반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정작 그 자신은 수감 중이었다. 결국 투팍은 <데스 로(Death Row)> 레코드의 사장 서지 나이트(Suge Knight)가 보석금을 주고 그를 풀어주는 대가로 <데스 로>와 계약하고 새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8개월 간의 감옥생활을 청산하고 새 보금자리에서 작품 구상에 들어갔던 그는 1996년 두 장 짜리 5집 음반 <All Eyez On Me>를 출시했다.
힙합 역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인 <All Eyez On Me>는 발매 첫 주 차트 정상에 올랐고, 그 해 미국 내에서만 6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특히 음반은 상업적 성공 외에 흑인들에게 자성의 목소리를 높일 것을 촉구하는 투팍의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음반을 가득 채운 수록곡이 모두 싱글로 발표됐어도 손색 없을 만큼 멋진 랩 앨범이었다. 닥터 드레(Dr. Dre)와 듀엣으로 랩을 선사한 'California love', R&B 그룹 조데시(Jodeci) 출신의 케이시 앤 조조(K-Ci & JoJo)가 피처링한 'How do you want it' 등 2곡은 싱글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영광은 그러나 끝을 불렀다. <All Eyez On Me>의 발매 후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이던 9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마이크 타이슨과 브루스 셀던과의 권투 시합을 보고 난 후 고속도로에서 총격 사망했다. 사고 차량에는 <데스 로> 보스 서지 나이트가 운전을 했었고, 그는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살아남았다.
결국 투팍은 사건이 발발한 지 6일 만에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 후 수백만의 애도자들이 슬픔을 함께 나눴고, 연예산업 전반에 걸쳐 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끊임없이 화제성을 남긴 채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매스컴은 여러가지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동서 힙합 진영의 파워대결이 불러일으킨 비극이었다든지, <데스 로>를 떠나기로 결심했던 투팍에게 서지 나이트의 배후세력이 관여했다는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수많은 의문이 언론매체를 장식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후 동부 랩 스타 노토리어스 비아지(Notorious B.I.G.) 역시 유사한 상황으로 살해 당했다. 이후 갱스터 랩 산업은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LA 타임지>지는 “라이벌이던 노토리어스 BIG가 측근 갱단 멤버에게 투팍의 살인을 청탁했다”라고 보도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허나 정확한 사유는 없어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을 걷고 있다.
투팍의 음악은 사후에도 여전히 인기를 끌었다. 그가 죽은 지 정확히 8주 후애 마카벨리(Makaveli)라는 이름으로 <Don Killuminati: The 7 Day Theory>(1996)가 발표되었다. 음반은 곧바로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2개월 뒤엔 투팍이 살아생전 녹음했던 수백 개의 미발표 음원이 남아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그것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다수의 유작음반이 출시되었다.
1997년 <R U Still Down? (Remember Me)>(2위), 1999년 <Still I Rise>(6위)에 이어 2년 뒤에는 차트 1위에 올랐고, 300만 장이 팔려나간 더블 앨범 <Until The End Of Time>(2001)이 나왔다. 물론 그사이 히트곡을 모아놓은 베스트 작품 <Greatest Hits>(3위)가 출시되었으며 싱글 'Changes'(32위)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근작 <Better Dayz>(2002)이 발표되며 그동안 투팍이 숨겨왔던 미발표 곡들이 지속적으로 공개됐다.
투팍은 이제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 숨쉬고 있지 않지만, 그가 토해낸 음악들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 모든 것들이 갱스터 랩으로 비극적 삶을 살다간 그에게 바쳐진 행복한 선물이다. 지난해 그는 노토리어스 비아지, 퀸 라티파(Queen Latifah), 런 DMC,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등과 함께 힙합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 by | 2008/01/02 00:40 | IZM.COM의 음악 리뷰 | 트랙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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